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그로버 클리블랜드 알렉산더 (문단 편집) === 타고난 내구성 === 그와 같이 뛰었던 [[https://www.baseball-reference.com/players/l/loberha01.shtml|한스 로버트]]의[* 1910년대에 필리스에서 알렉산더와 선수로 같이 뛰었고, 후술되는 [[1926년 월드 시리즈]]는 그가 카디널스의 스태프로 있었던 시기로 추정된다. 은퇴 후 [[미국육군사관학교]] 야구팀의 코치, 자이언츠의 전설 [[존 맥그로]]의 스카우터, 필리스와 레즈의 코치와 감독을 지낸 등, 크고 작은 야구계 경력이 굉장히 다양하다.] 회고: >기자: "그로버 클리블랜드 알렉산더와 한 팀이었죠?" >로버트: "예." >기자: "술꾼이었나요? (로버트: "예") 1차대전 이전에도요?" >로버트: "오우... 아주 헤비 드링커였죠. 그리고 전쟁 이후에 벤치에서 간질 발작을 일으켰는데," >기자: "벤치에서요?" >로버트: "그때마다 브랜디같은 독주로 정신을 차렸죠. 그리고 아내와 불화가 있었는데... 제가 볼땐 술 마시는 습관은 그때 시작된 것 같아요. 전쟁에서 돌아왔을 땐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는데, 그때부터 엄청 마시기 시작했죠. 진짜 그때부터는... 휴우..." >기자: '''"어떻게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신 사람이 그토록 오래 선수생활을 할 수 있었죠?"''' >로버트: '''"좋은 몸을 타고났죠. 그리고 절대로 뛰지 않았어요. 투수생활을 하면서도 절대로 뛰지 않았죠."''' >기자: "제가 알기로 투수한테는 다리가 그렇게 중요한데도요?" >로버트: "(큰소리로) 그러게 말이에요! 그는 워밍업을 길게 할 필요도 없었어요. [[1926년 월드 시리즈|월드 시리즈]]에서 카디널스가 양키스를 상대할 때 그는 경기 전날 밖에서 엄청 퍼마셨어요. 밤새도록 엄청나게 취했고요. 감독이랑 스태프도 모두 알고 있었지만 막을 수 없었죠." >기자: "뭐... 당시에 어린 선수도 아니였으니..." >로버트: "그렇죠. 그리고 경기날 벤치에서 자고 있었는데, 감독이 구원투수로 나오라니까 헤인스가 그의 손가락 물집을 잡아 당기는(...) 와중에 (양키스의) [[https://www.baseball-reference.com/players/l/lazzeto01.shtml|토니 라제리]]가 주자만루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오더군요. 알렉[* 알렉산더의 애칭]을 흔들어 깨우니까 워밍업으로 공 다섯 개 던지고 마운드 위로 올라갔는데, 경기장 좌측에서 마운드로 걸어가는 장면이 지금도 생생하네요. 알렉이 던진 초구를 토니 라제리가 좌측스탠드 방향으로 라인드라이브 파울을 날렸는데, 그제서야 잠이 깬 것 같더군요. 그리고 (라제리를) 삼진으로 처리하고 경기는 카디널스의 승리로 끝났죠. 그 누구도 해치지 않을 사람이었다만, 마운드위에선 정말 터프했어요. 휴우... 빈볼은 두 눈 사이로 날렸죠. 언젠가 그를 타석에서 만났는데, 제 심장위를 맞췄거든요. 그가 절 죽인 줄 알았어요. 바로 쓰러졌는데 숨이 안쉬어지는거에요. 1분도 안돼 맞은 부위가 엄청 크게 부풀어 올랐고요. 우측 외야로 밀어치려고 하다가 공이 안쪽으로 들어온 게... 퍼억!! ...쓰러졌지만 경기는 계속 뛰어야 했는데, 계속 숨을 쉴 수 없었던게 지금도 생각나네요. ...거친 시절이었죠." >기자: "(공이) 빨랐나요?" >로버트: "어우... 아주 묵직한 공을 던졌죠. 작고 짧은 손가락으로 공을 잡았는데, 손끝에서 공이 떠나면 [[패스트볼#s-2.1.1|마치 공이 떠오르는 듯했어요.]][* [[패스트볼#s-2.1.1|라이징 패스트볼]] 항목의 묘사와 정확히 일치한다. 영상도 제대로 남아있지 않은 100년전 레전드의 구위를 묘사하는 귀중한 자료.] 몸에 맞으면 납덩어리에 맞는 듯한 느낌이었죠." >인터뷰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qPoQ9NbfLNQ&ab_channel=ThisDayInBaseball]] * 데뷔 후 첫 10년동안 '''루키 시즌을 포함해 7번이나 최다이닝'''을 기록했을 정도로 당대 최고의 이닝이터이자 고무팔이었다.[* 특히 '''데뷔 7년차에 6번이나 최다 이닝'''을 던졌다.] 그렇게 엄청나게 많이 던지고도 무려 43세까지 현역으로 활동하며 통산 5190이닝을 기록했다. * 1차대전에서 돌아왔을때가 만 32세였고, 매년 300이닝 이상을 거뜬히 던지던 이전과는 달리 이후 성적이 들쭉날쭉한데, 여기에 있는 사연이 참으로 기구하다. 에이징커브는 물론이고, 전쟁에서 당한 청력상실, 오른팔 부상, 간질 발작, PTSD, 알코올 의존증 등, 선수로서의 생활은 물론이고 일반인 기준으로도 자살한다고 해도 놀랍지 않을 정도로 심신이 망가진 상태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의 망가진 몸은 자그마치 그가 40대에 은퇴할때까지 '''12년이나 더 그 폭음을 견뎌줬는데,''' 그가 얼마나 상식을 초월하는 강골이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오늘날같이 건강과 영양상태가 좋은 시대에도 보통 사람은 30대에 접어들면 매일 술먹고 출근하는 생활은 버티기 힘들다. 근데 이건 자그마치 40대까지 망가진 몸 + 폭음으로 '''프로 스포츠''' 무대에서 버틴 케이스다.][* 특히 1920년의 성적은 bWAR기준 11.9로, 레퍼런스의 기여도 수치로는 커리어하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